산골일기]를 연재하며....
경기도아파트신문이 작가 정판수의 “산골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 정판수는 2010년 발간한 “아버지의 자전거” 라는 가족간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호평을 받은 작가로 오랜 교직 생활을 뒤로하고 경주시 인근 농촌에서 저서활동과 함께 농삿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아버지의 자전거”라는 작품의 이야기에 아버지의 직업은 '똥 퍼', '물방개 장수', '숯장수', '만화방' 등을 거쳐 '공중화장실 청소' 등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자랑스럽지 못한 그 직업들 속에 한 번도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그 사랑을 자전거로 표현해주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번“산골일기”에는 정판수 작가의 따듯한 감성으로 발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것으로 기대되어 독자들과의 만남이 더욱 기대가 된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사랑을 당부합니다.
(편집자 주)
작가 : 정판수
1978년 부산대학교 국문과 졸업
양산여종고, 혜화여중, 현대정보과학고, 현대고등학교, 현대청운중학교 등에서 37년간 근무하다가 2015년 2월 명예퇴직근무 , 대구미래대에 출강하여 [언어와 문학] 강의
월간 [문학21] 2002년 2월호에 ‘울 엄마의 세 가지 거짓말’이란 수필로 등단
월간 [마음수련], [문화연대] 등의 잡지와, 교육 관련 잡지 [함께여는국어교육], [울산교 육]등의 잡지에 기고 , 2010년 수필집[아버지의 자전거]펴냄
봄이 되면 감자를 심는다. 감자를 심으려면 먼저 씨감자를 확보해야 한다. 그 다음 ‘북(식물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을 돋워놓고 씨감자를 쪼개 재를 바른 뒤 ‘눈’이 위로 오도록 심는다.
한 번이라도 감자를 심어본 사람은 알리라. 씨감자의 눈은 감자의 몸통 가운데 '팬 곳'에 생긴다는 걸.
혹 감자를 깎다보면 흙이 들어 있어 한 번 더 칼질을 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다.
헌데 뚱단지로 통하는 돼지감자는 다르다. 예전에는 그게 저절로 논둑이나 밭둑에 자라거나 아니면 산에 자라므로 캐와 옮겨 심으면 됐다.
요즘은 그럴 필요 없이 돈이 된다고 하여 (당뇨에 특히 좋다고 하여) 시장에 나가면 모종이 많이 나온다.
돼지감자를 캐 본 경험이 있거나 모종을 심어본 적이 있는 이라면 감자와 한 가지 다르다는 걸 느꼈으리라.
감자는 속이 팬 곳에 눈이 나오는데 반하여 돼지감자는 튀어나온 곳에 눈이 나온다.
단지 ‘돼지’라는 말이 더 붙었을 뿐인데 이렇게 다르다. 하나는 '팬 곳'에, 하나는 '튄 곳'에 눈이 나온다는 점.
감자의 눈이 나오는 부분은 '팬 곳'이라 삶거나 굽거나 요리를 할 때 모래나 흙 같은 게 들어 있고 약간의 독성도 있어 칼을 깊숙이 넣어 생살까지 파내야 한다.
허나 돼지감자는 껍질을 깎아낼 필요가 없다. 다만 눈이 나온 곳은 '튀어나와' 있어 칼로 도려내면 그뿐.
감자의 팬 곳과 돼지감자의 튀어나온 부분은 매끈한 다른 부분에 비하면 분명히 '흠집'이다. 달리 말하면 '결점'이다.
그 둘을 볼 때마다 들어가지도 튀어나오지도 않은, 즉 굴곡 없이 매끈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칼질해야 하는 주부 입장에선 더 그럴 게고.
‘팬 곳’ 때문에 절망적인 삶을 살 뻔한 이가 그걸 이겨내 성공한 경우가 더러 있다.
1950년 미국에서 한 아이가 조산아로 태어나 보육 과정에서 잘못해 두 눈을 잃어 앞이 안 보여 친구들과 뛰어 놀 수가 없어 늘 혼자 지내야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하루는 수업 중인 교실에 쥐가 한 마리 나타났다. 교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
쥐를 잡기 위해 선생님과 학생들은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아무도 이 쥐가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눈은 보이지 않은 대신 청력이 뛰어났던 이 학생은 쥐가 벽장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 덕분에 쉽게 쥐를 잡을 수 있었던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 그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 반 아이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구나. 눈보다 나은 귀가 어쩌면 네 길을 밝혀줄지 몰라!”
이 소년은 자신에게 두 눈이 없는 대신 청각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그 결과 20세기 후반 가장 창의적인 음악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바로 198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티비 원더다.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며 당대 최고의 외교관이었던 강감찬, 역사에 길이 빛날 대업적을 남긴 장군이면서 외교관이라면 키가 크고 체격도 우람하고 얼굴 또한 호감형의 소유자로 알기 쉽다.
그런데 장군은 정반대였다. 키가 150cm 즈음에, 체격은 왜소했고, 얼굴 또한 아주 못 생겼다고 한다. 그러니 장군감으론 물론 외교관으로서도 전혀 아니었다.
허나 장군은 어릴 때부터의 꿈인 다른 나라와 외교하여 나라의 국익을 위해 일하려는 꿈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늘이 네 용모를 그리 만든 건 네 꿈을 접어라는 게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장군은 체격의 불리함을 극복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고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남는 위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팬 곳 대신 튀어나온 결점을 살려 성공한 이들을 한번 보자.
‘튀는 행동’ 때문에 다른 이들로부터 지적받으면 주눅이 들어 대부분 기가 죽는데 그걸 오히려 살려 성공한 사람도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말대꾸를 자주 하는 아이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는 환영받지 못한다. 즉 ‘튀는 아이’는 찍히기 십상이다.
자칫하면 말대꾸하는 아이는 건방진 애로 찍히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도 진도에 늘 쩔쩔매는 교사의 입장에선 괘씸죄로 눈 밖에 나기도 한다.
몇 년 전에 나온 뉴스에서 버지니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공적인 기업가 가운데 어릴 때 말대꾸 많이 아이가 많다는 사실을 내놓았다.
또한 과학자로 성공한 이들 가운데는 엉뚱한 질문을 많이 한 아이가 많다는 결과도 내놓았다. 엉뚱함이 장점이 된 셈이다.
「쥬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 「태양의 제국」 등의 창의적인 영화로 세계인들의 공상을 마음껏 펼치게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얼마나 많이 해 수업을 망치게 했던지 담임교사가 부모님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너무 산만하여 특수학교에 보내거나 집에서 따로 가정교육을 시켜야 하겠어요.”
어머니는 그 말에도 아들을 믿고 엉뚱한 질문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려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스필버그가 나중에 회상을 했고 ...
이제 곧 봄이 되면 감자를 심는다. 싹이 난 '팬 곳'을 보아 여러 쪽으로 쪼개 심는다.
반찬으로 먹으려 할 때 그 ‘팬 곳’은 무척 귀찮은 부분이지만 감자로 보면 그곳에서 싹이 나와 새끼들을 주렁주렁 매달리게 만드니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
돼지감자도 그 ‘튀어나온 곳’이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지만 그곳을 중심으로 하나둘 싹이 다시 트면서 그의 종족을 퍼뜨리는 중심점이 된다.
이를 보면 우리가 흠집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즉 흠집이라 생각되는 것도 생각을 달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장점으로 탈바꿈시킬 수가 있다는 걸.
전래동화 속의 혹부리영감은 그 혹 때문에 오히려 부자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내게도 혹이 많다. 그동안 그걸 감추기에 바빴을 뿐.
이제 나의 혹을 감추기보다는 그 속에서 빛나는 보석을 찾아내려 한다. 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올해는 정말 보람된 한 해가 될 것 같으니까 말이다.